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문단 편집) === 두 감독의 논쟁 === [[스파이크 리]]가 이 영화와 아버지의 깃발을 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엄청 화를 냈다고 한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08/2008060800858.html|#]] 링크 기사를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스파이크 리는 '''"[[이오지마 전투]]에 흑인들이 참전한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데 이를 전혀 다루지 않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흑인 [[미군]]들의 역할을 깔아뭉개 역사에 먹칠을 했다!"'''고 공격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리가 도대체 역사를 제대로 배웠는지 궁금하다. 이오지마의 수리바치 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은 장병 중에는 흑인이 없었다."'''며 '''"만약 내가 [[성조기]]를 꽂은 군인들 사이에 흑인을 포함시켰더라면 사람들이 날 미쳤다고 여겼을 것이다. 리는 입을 닥쳐라!"'''고 크게 화를 냈다. 그러자 스파이크 리는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라며 맞받아쳤다. 결국 리의 삽질에 불과했는데, 일단 흑인 해병대원들이 7~900명 정도 이오지마 전투에 참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는 철저하게 흑백 분리 원칙이 지켜지던 때였기에 해병대는 흑인을 조리병, 운전병 등 비전투 특기에만 배치했고,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꽂은 군인들은 다수의 백인과 1명의 [[아메리카 원주민]]계였다. 게다가, 흑인의 참전을 다루지 않았다는 리의 거짓말과는 달리, 이스트우드는 엄연히 흑인 미 해병대원도, 그것도 고증에 맞게 [[전차상륙함]]에서 자신들의 트럭 옆에 서 있는 것으로 등장시켰다. 즉, 이오지마에 참전한 흑인 해병들의 존재를 이스트우드가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도 아니고 수리바치 산 정상에 깃발을 꽂은 해병들의 이야기이니 여기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레 배제된 것뿐인데 스파이크 리가 감정적으로 달려들어 [[고증오류]]를 강변하며 생긴 해프닝이다. 그 외에도 [[정치적 올바름]]의 범람 속에 스파이크 리가 이런 식으로 인종적 피해의식을 드러내며 다른 감독에게 시비건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사람은 흑인 총잡이가 백인 범죄자와 노예주를 쏴죽이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백인 인종주의적이라고 비난했을 정도로 피해의식이 심한 사람이다. [[타임(주간지)|타임지]]에서는 여기에 동조해 흑인 해병들에게 좀 더 장면 할당을 할 수도 있었는데 너무 지나가는 식으로만 보여준 것은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는 사설을 내보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감상이 있었는데, 한국에선 이오지마에는 조선인 징용자들도 많이 끌려왔었는데 이를 다루지 않았다는 자기 중심적인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이 두 개를 동일한 피해의식이라 보면 안 된다. 흑인 해병은 나오기라도 했지만 조선인 징용자는 영상에 아예 나오지도 않았으니까.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주제는 전쟁터에서 군인(미군, 일본군)들이 갖는 공포와 스트레스, 가족애를 다루는 것이지, 인종차별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영화 제작에 있어 쓸데없는 잔가지를 쳐내고 제한된 시간 내에 주제를 명확하게 보여주려 스토리를 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설프게 주제와 상관도 없는 인종차별을 다루려고 흑인 병사나 조선인의 강제 징용을 끼워넣으면 전개만 산만해질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